설교/사무엘상

(사무엘상 3장)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본교회 2026. 7. 1. 22:34

(삼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상'은 히브리어 חָזוֹן (하존, ḥāzôn)입니다.

이 단어는 환상(vision), 계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예언적 계시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주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잠언 29:18 "묵시(חָזוֹן)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계시를 주지 않으시던 침묵의 시대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

우리가 부부 사이에 말을 안할 때, 혹은 직장 동료 사이에 말을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 말을 하지 않습니까? 불만이 있을 때, 서운한 것이 있을 때, 내가 말해 봐야 내 말을 무시할 때, 내 말을 너무 가벼이 여겨 감정이 상할 때, 내가 말해 봐야 내 말이 존중 받지 못할 때. 말하기 싫죠. 어차피 말해 봐야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거고, 괜히 말하는 나만 서운한 감정이 들기 때문에 말을 안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 백성에게 말을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무시해 버리고 듣지도 않고 오히려 경홀히 여겨 버리니 말씀을 하시기가 싫으시겠죠.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일이 안풀리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니이다”, 등과 빛이 있어야 장애물에 걸리지 않고 안전히 길을 가고 잘 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고 바른 길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지혜이기 때문에 어리석음 가운데 빠지지 않고 망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인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 그가 어려움과 시련 가운데 있을 때, 혹은 원수들의 괴롭힘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가 되어 지는데, 여기서 위로라는 것은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말로 위로하는 그런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내면에서 어려움과 환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9:1-2)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우릴 위로하지 않으시면 아무런 보호와 인도와 돌봄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이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백성들이 제사를 싫어하게 만들고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악행을 행하고 아버지 엘리는 그 사실을 듣고도 그 시대의 사사와 대제사장으로써 바로 잡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로써 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욱 멀어지고 범죄하고 하나님은 이들에게 말씀을 하시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2~4절에

(삼상 3:2-4)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 리가 육신적인 눈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 또한 점점 멀어가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 오십니다. 항상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 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기가 벗었음을 알고 두려워 숨었을 때, 하나님이 이들을 먼저 찾아 오십니다. 에포 아타? 아담아 어디 있느냐?

가인이 아벨에게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을 때도 하나님이 가인을 사랑하셔서 먼저 찾아 오십니다.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도 내십니다. 그러나 결국 가인은 아벨을 들에서 쳐 죽입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그 최초의 살인자에게도 찾아 오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12:1-2)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갈대아 지금의 이라크 땅에 살고 있던 아브람을 찾아 오신 것도 하나님 그에게 말씀하신 것도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보이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보이는 우리에게 먼저 찾아 오셔서 말을 거시고 우리 삶에 관여 하시는 것입니다.

?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먼저 말을 걸고 우리 삶에 관여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 그에게 나의 마음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그가 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시고 사랑하시니까 우리를 찾아 오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사무엘을 통해 다시금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아직 경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는데 엘리에게 달려 갑니다. 세 번이나 그렇게 합니다.

(삼상 3: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성경에 기록대로 사무엘은 아직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였고 직접 말씀을 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는 것은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지만, “야다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어에서 אֲנִי מַכִּיר אֶת־שָׂרָה그냥 아는 것, “אֲנִי יוֹדֵעַ אֶת־שָׂרָה하면 부부 관계를 통해, 경험적으로 깊이 아는 것 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직 사무엘은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엘 리가 부르는 줄 알고 엘리에게 달려 간 것이죠. 그래도 예전에는 엘리가 하나님을 경험적으로도 알고 하나님의 말씀도 들어 본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세 번이나 사무엘이 자기에게 달려 오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는구나 알고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라고 알려 줄 수 있었던 것이었죠.

 

우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엘리처럼 옛날에는 들어 봤는데 지금은 내게 말씀하지 않으셔... 라고 하며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항상 항상, 지금의 진행형이 되어야 하고, 어제 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제일 뜨거워야 합니다. 예전에는 열정으로만 뜨거웠던 신앙이었다면 오늘은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오는 성숙한 신앙으로, 연단을 통해 넓고 깊이 있는 신앙으로, 열정과 함께 지혜와 덕이 동반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한 때는 내가 이러한 체험도 했었고 한 때는 내가 이러한 헌신도 했었고 한 때는 내가 이러했었어. 내가 해 볼 것 다 해봤어 하며 냉소적인 상태로 굳어 있으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엘리와 같은 사람인 것이죠. 영적이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사람. 의자에 앉아서 등장한 후,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으면서 퇴장하는 사람. 그러나 그 또한 한나를 위한 축복의 말도 해주고, 사무엘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조언도 해 주었습니다. 나름 대제사장과 사사의 직무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용되긴 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심판 받고 멸망 받을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삼상 3:13-14)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우리의 신앙이 제자리이다. 그건 죽은 신앙입니다. 생명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생명은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 시련의 때에, 혹한의 때에, 역경의 때에는 잎을 떨어 뜨리고 가지가 빠짝 마른 듯이 죽은 듯 보이지만 그 때는 깊이 깊이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때입니다. 그리고 다시 비가 와 물을 만나고 기온이 올라가 환경이 주어지면 잎을 내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살아 있는 신앙, 목표를 향하여 달려 가는 신앙, 안주하지 않은 신앙, 예수님에게 까지 자라나는 신앙을 유지했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합니다.

(빌립보서 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도 이렇게 살아 있는 신앙을 가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사무엘처럼 아직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맛보아 알지어다"는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여 알라는 뜻입니다. 맛보다(히브리어: טָעַם, 타암) : 직접 맛보다, 체험하다. טָעִים (타임, ta'im) : 형용사 맛있는으로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זה טעים. (제 타임) "이것은 맛있다.“ 타임 메오드 : 매우 맛있다.

알다(히브리어: יָדַע, 야다) : 경험을 통해 인격적으로 알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도 사무엘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느냐? 사무엘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찾아 오시는 경험을 할 수 있느냐? 드물다 라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아예 없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비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특별한 방법으로 일하시기 보다 보편적인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사무엘 시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사무엘 한 사람이었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모세의 형 아론, 누이인 미리암, 그리고 70인의 장로에게도 말씀하시기도 하셨지만 대부분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그를 통해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이들을 선지자라고 부르죠. 메신져인 것이죠. 백악관, 청와대에서 메시지를 전할 때 대변인을 통해서 말합니다. 그것이 가장 공신력 있고 정확한 메시지입니다. 물론 다른 경로를 통해서 말이 세어 나오기도 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지고 백악관, 청와대에서 그런 말 한 적 없다라고 부인해 버리면 그냥 풍문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가 말 할 때 그 말은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고 선지자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세,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등등의 모든 선자자들은 궁극적으로 예수님께로 이어지며 예수님께서 온전하고 완성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1:1-2)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온전하신 선지자 예수님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의 첫 메시지, 첫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돌이키라! 천국,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였다.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자, 영원한 형벌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 십자가의 자비와 긍휼을 얻게 된다. 그 메시지!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 그 돌이킴의 메시지! 그 구원의 메시지를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또한 우린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무엘 시대에는 성경이 모세 오경 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들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선포되고 그 말씀들이 기록되고 예수님의 말씀과 공생애의 기록 그리고 사도들의 편지들이 모여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베드로후서 1:20-21)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이 성경 말씀이 오늘 날도 성령의 역사로 읽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에게 묵상하는 사람에게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시대에는 하나님이 직접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다면 오늘 날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에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하고 주님의 뜻을 발견하려 하고 주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아 세상을 이기려하고 환란과 역경을 이기려 하고 주님의 길을 발견하려고 성경에 귀를 기울일 때, 성령께서 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부 간에도 대화 없이 지낼 때, 가족끼리도 대화없이 지낼 때, 직장에서도 대화 없이 지낼 때, 그 가운데 오해가 쌓이고 서운함이 쌓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각 자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고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비밀을 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린 사무엘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종 비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한 완전한 구원, 앞으로 이루어질 천국의 비밀....

우린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길이 열립니다. 그래야 힘이 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 삶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비젼이 보이지 않는 엘리의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시대, 각 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 받지 못하는 이 시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