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인애로 베들레헴에 온 룻
룻기 1:1~2:7
(룻기 1:1-2:7)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룻기를 이야기합니다. 룻기는 단 네 장밖에 되지 않습니다.
천천히 읽어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고, 보통은 5~6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아주 짧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이야기 안에는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붙드시고 인도하시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기적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 과부가 시어머니를 끝까지 떠나지 않고 따라가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조용히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룻기는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믿음이란 무엇인가’, ‘참된 인애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지금 5월 초순이면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는 보리 추수가 한 참이고 곧 밀 추수로 넘어가는 계절입니다. 시기적으로도 일치하는 이 때에 룻기 말씀을 함께 살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룻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는 것은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전에 하나님이 세우신 재판관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던 때라는 것입니다. 이 룻기의 마지막장 마지막절에 다윗 왕이 태어나는 것으로 책이 마무리됩니다. 4: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 이야와 증조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다윗 왕 시대에 이미 룻기가 기록이 되어 다윗 왕이 기록된 책으로 읽었는지 아니면 그 후에 문학 형태로 기록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다윗 왕은 베들레헴 출신이자 자신의 증조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을 것입니다.
왕이 없어 각 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라고 평가하며 신앙적으로 암흑기로 표현하고 있던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모세 율법을 지키려하여 어려움에 처한 가까운 친족의 기업을 물러주거나, 추수 때에 떨어진 이삭을 모두 챙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갈 수 있게 하는 등 나름 대로 신앙 공동체로 살려고 하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여전히 이 시대에도 성막은 실로에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던 시대입니다.
그런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에도 흉년이 드는가?
이 땅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 그의 선조 다윗 왕이 양치기를 하던 땅, 야곱이 그의 아내 라헬을 묻은 땅.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내려가는 땅입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땅, 하나님이 약속하여 살게 하신 땅에서도 흉년은 들 수 있습니까? 네, 성경은 오늘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축복하시며 가라고 하신 땅이 있습니다. 그 땅은 가나안 땅이고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듭니다.
(창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오늘 룻기 1장1절에 보면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합니다. 왜? 베들레헴에 흉년이 드닌까?
다시 한 번 질문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도 기근이 들고 흉년이 들 수 있습니까?
네, 그럴 수 있습니다.
왜? 기근이 들고 흉년이 들었습니까? Why? I don’t know!!
왜 그런지 우리는 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그것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목적이 있고 계획이 있어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사 55:8-9)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아브라함은 기근을 들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왜? 살려고.
룻의 시아버지 엘리멜렉은 모압 땅으로 갑니다. 왜? 살려고. 살아보려고....
아니 약속의 땅에서 버텨야지. 믿음으로 견뎌야지... 저는 이것을 믿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버티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이러한 상황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셨고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고 믿고 움직이는 것도 믿음 있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피난처를 찾아간 걸 비난하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어떤 믿음의 선택을 하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흉년이라는 상황 자체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건 분명합니다. 그가 움직일 때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움직였는가? 그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룻기에서는 분명 왜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 기룐이 모압 땅에서 죽고 나오미 혼자 남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나오미 혼자 남고 고통스럽게 되었다는 사실 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룻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회복되었는가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는 부분에 대해 우리가 왈가왈부하며 이래서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다. 저래서 고통스럽게 되었다 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하야 합니다. 모든 고통 가운데,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다 라고만 생각하고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어떻게 도울까? 또는 어떻게 이 상황을 이겨 낼까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몸부림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린 “현실적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자 이들이 한 일은 그 핍박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서 교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이방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핍박을 피해 흩어짐을 통해 복음이 여러 지역에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이 방문하기 전에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세우진 교회입니다. 흩어진 것 자체, 핍박을 피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믿음 생활하기 위해 터전을 옮긴 것도 잘한 일이고, 핍박 가운데서도 교회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던 것도 잘 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키고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최선의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기근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 원인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 원인에 너무 초점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믿음으로 견디고 이기고 하나님 안에서 몸부림치며 오늘도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나오미를 그 이름 그대로 기쁨으로 다시고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살기위해 내려가서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이 남습니다. 이들은 오르바와 룻이라는 모압여인과 결혼하고 10년 쯤 되었을 때 두 아들은 모두 죽어 버립니다. 이 집은 하루 아침에 나오미, 오르바, 룻 이 세 여인만 남게 됩니다. 나오미는 고향 땅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사 그들에게 양식 주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나오미는 자기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내게 지금 남은 아들이 없고 지금 내가 다시 시집가서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을 키워 너희들의 남편으로 준다고 해도 어느 세월에 너희들이 그것을 바라고 기다리겠니? (이건 그 시대의 풍속입니다. 첫 째 아들이 죽으면 둘 째 아들이 형수의 남편이 되어 형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죠). 그러지말고 그냥 너희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너희는 아직 젊으니 다른 남자를 찾아 봐라. 그에게 시집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를 따라 오지 마라. 난 내 고향으로 돌아갈련다.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늙은 어머니를 두고 어디가겠어요. 어머니가 고향에 돌아간다고 누가 반겨주겠어요. 그래도 젊은 저희가 어머니를 끝까지 책임져야죠. 나오미는 다시 말합니다. 니들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날 괴롭게 하지 말고 너희 갈길 가라. 너희들의 짐이 되긴 싫다. 너희 살 길 찾아 가라. 난 고향에 돌아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 뭐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갔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첫 째 며느리 오르바는 “그럼 어쩔 수 없죠. 어머니 건강하세요” 하면서 “안녕히 계세요” 하며 돌아갑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릅니다.
2. 왜 룻은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쫓았을까?
완전 거지가 된 시어미를 쫓아 거리 상으로는 가까워도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가진 이웃 나라로 건너가서 산다는 것이 큰 모험이었을 것을 뻔한 일인데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1) 룻의 말: 우선 그녀의 말을 살펴 봅시다.
(룻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나는 어머니와 운명을 함께 하겠습니다. 어머니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을 내가 선택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을 내가 선택하겠습니다.
2) 보아스의 말
보아스의 말을 살펴봅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룻을 보시는 시각을 보아스의 말을 통해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룻 2: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①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시며 에서 룻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보답 받아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입니다. 한자로 말하면 효, 히브리어로 말하면 헤세드, 오늘 설교 제목인 인애입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 늙은 시모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리 이삭 떨어진 것을 주워다가 공궤하는 룻, 젊은 남자를 따라 자기의 안일을 추구하지 않고 홀로 늙은 과부가 된 여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인애, 효, 헤세드 그것에 대해 보답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②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이 상 받을 만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보호 받으러 온 일입니다. 시어머니에게 들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온 그녀의 믿음입니다. 히브리어로 애무나 그녀의 믿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룻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택하고, 헤세드-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룻이 시어머니에게 베푼 이 헤세드는 보아스를 통해 다시금 자신이 돌려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 갚아 주셨습니다.
(룻 2: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선행은 선행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행동 그대로 되갚아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린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고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한 상이있습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 받으러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를 그의 날개로 품어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자 나아갈 때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인애를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은 인애를 베푸시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에게 그 믿음의 상으로 구원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원합니다.
3. 나오미의 절망
베들레헴에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나오미를 알아봅니다. 10년전에 고향을 떠났던 나오미가 돌아온 것이 온 동네에 큰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룻 1: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는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룻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마라는 고통, 쓰다는 뜻입니다. 마라의 쓴 물이라고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자신을 심히 괴롭게 하신 이가 전능자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담담히 자신의 현실을 받아 들입니다. 하나님이 날 괴롭게 하셨다. 난 지금 기쁨, 즐거움이 아니다 난 지금 고통 중에 있다. 쓰라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완전한 절망은 없기 때문입니다. 빈손으로 돌아오 나오미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공허하고 다 끝난 인생 같은 늙은 과부 여인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 끝난 인생 같은 그녀에게도 아직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녀의 소망이셨고 다시금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하나님이 소망이셨습니다.
룻기에 중요한 관점은 당연히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소망 없는 자에게 역전의 기회, 회복의 기회,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우리는 초점을 가직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방법은 나오미에게 있어서 룻이었고 보아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을 보여준 룻과 보아스였습니다.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감내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려는 룻과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은 나오미를 마라- 쓰다-에서 나오미-기쁨, 즐거움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보아스와 룻의 자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바로 자신의 손해와 희생을 감내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인 인애를 통해 우리를 다시금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고 또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완전한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활의 기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에 돌아올 때 그녀의 생각과 룻기의 결말은 사뭇 다릅니다. 완성되지 않은 인생의 장면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소망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 받으려고 나아오는 자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인애를 베푸는 자를 보호해 주시며 그에게 온전한 구원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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