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편을 택하라
누가복음 10:42, 고린도전서 9:12-14
본문 말씀
누가복음 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들어가는 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섬길 것인가, 쉴 것인가.
내 권리를 주장할 것인가, 양보할 것인가.
봉사할 것인가, 말씀을 들을 것인가.
사람의 기대를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성경에는 이러한 고민 앞에서 중요한 선택을 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이고, 또 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의 선택이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리아는 섬김보다 말씀 듣기를 선택했고,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섬김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두 사람은 같은 원리로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금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선택했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1. 마리아는 말씀 듣기를 선택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앞부분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했지만,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그를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7)
행동하는 사랑, 실천하는 믿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는 언뜻 보면 정반대처럼 보입니다.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며 손님을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이 집에 왔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섬김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섬김은 매우 중요합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에도 봉사와 섬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르다는 섬기고 있었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보다 일이 더 중요해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마리아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그렇다면 지금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선택을 칭찬하셨습니다.
2.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은 또 다른 선택을 보여 줍니다.
성경은 복음 사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칩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전 9:14)
구약의 레위인들도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를 통해 생활했습니다.
사도들도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도록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역자를 돕는 것은 성경적인 원칙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전 9:12)
고린도는 상업 도시였습니다.
당시에는 철학자나 강연자들이 강연을 통해 돈을 벌곤 했습니다.
만약 바울이 사례비를 받으며 사역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도 결국 돈 벌려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구나.”
바울은 그것이 복음의 장애가 될까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직접 천막을 만들며 생활비를 벌었고, 그 가운데 복음을 전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편리함보다 복음의 유익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3.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리아와 바울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말씀 듣기를 선택했고, 다른 사람은 섬김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기준으로 결정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이 두 사람의 삶을 움직였습니다.
마리아는 지금은 말씀을 들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은 지금은 권리를 내려놓아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신앙은 정해진 공식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마리아처럼 멈추어 앉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바울처럼 권리를 포기하고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4.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의 눈에 게으르게 보였을 수 있습니다.
언니는 바쁘게 일하는데 혼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였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후원을 받으며 사역하는데 혼자 일하며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도 종종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가입니다.
5. 마리아에게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왜 마리아는 그렇게 언니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단순히 좋은 선생님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훗날 향유 옥합 사건에서도 나타납니다.
마리아는 매우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왜 이것을 허비하느냐?”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예수님보다 귀한 것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예수님 그분 자체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아낌없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맺음말
신앙의 성숙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분별하고 충성되게 감당하는 데 있습니다.
마리아는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때는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때는 바울처럼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날마다 가장 좋은 편을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설교 > 신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의 은혜, 사람의 책임 (0) | 2026.05.31 |
|---|---|
| 항상 기뻐하라 –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살전 5:16, 롬 8:28) (1) | 2026.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