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사람의 책임
고린도전서 10:1-13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은 많은 성도들이 위로와 힘을 얻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이 말씀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고난과 어려움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고난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게 적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사용된 “시험”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인데, 이 단어는 유혹을 의미하기도 하고 시련이나 연단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문맥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면 앞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고,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물을 마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넘어졌습니다.
무엇 때문에 넘어졌습니까?
우상숭배와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과 원망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13절에서 말하는 시험은 단순히 고난과 환란이라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죄의 유혹에 더 가까운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당하는 유혹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유혹 가운데서도 반드시 피할 길을 준비해 두신다.”
여기서 “피할 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크바시스(ἔκβασις) 입니다. 탈출구, 출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시험 자체를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시험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십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동침하자고 유혹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피할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옷을 붙잡힌 채 그대로 두고 도망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탈출구였습니다.
문제는 피할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넘어지는가?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는데 왜 우리는 넘어질까요?
야고보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4)
우리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길을 보여주시지만 사람은 욕심을 따라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예레미야도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
우리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연약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밤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그러면서 피할 길도 알려 주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
주님은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잠들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유혹이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미 피할 길을 열어 두셨다.”
“그 길을 선택하라.”
광야의 네 가지 실패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네 가지 죄를 보여 줍니다.
첫째, 우상숭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는 우상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상은 반드시 신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돈일 수도 있고,
성공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과의 싸움은 회심할 때 한 번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평생 계속되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둘째, 음행
바울은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가는 삶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셋째,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민수기 21장의 불뱀 사건입니다.
백성들은 광야 길이 힘들어지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미 하나님은 수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셨고,
만나를 주셨고,
물을 주셨고,
계속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가?
정말 하나님이 선하신가?
정말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실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신뢰하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불신앙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넷째, 원망
민수기 14장의 가데스 바네아 사건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절망적인 보고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믿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을 선택했습니다.
밤새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우리를 왜 여기까지 데려왔습니까?”
“차라리 애굽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민 14:27)
원망은 단순한 불평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이 모든 죄의 뿌리는 무엇인가?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원망.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뿌리가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전 10:6)
문제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불신앙입니다.
그 마음에서 우상도 나오고,
음행도 나오고,
원망도 나오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태도도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
그렇다면 성도는 실패하지 않는 존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요일 1:8)
성도도 넘어집니다.
실패합니다.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거룩함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모세의 중보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모세보다 크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십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절망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나라고 말합니다.
다시 달려가라고 말합니다.
다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맺음말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은 단순한 위로의 말씀이 아닙니다.
동시에 매우 강력한 도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유혹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피할 길도 준비해 두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와 타협하며 변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순종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죄와 싸우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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